서울독립영화제2021 본선 단편경쟁 부문 예심 심사평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을 심사과정에서 열어 보는 것은 설레는 일인 동시에 숙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새롭고 신비로운 세계를 발견하듯 조우하게 되는 것을 바라 마지않지만, 혹여 그런 행운에 닿지 않더라도 각 작품 안에는 저마다의 영화적 상상력을 꿈틀거리게 한 수백 수천 가지의 삶과 최선의 열정과 마음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올해의 예심위원들은 지구적 재난의 시기 중에도 더 왕성하게 발현되는 영화적 고민과 제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단편경쟁 부문에는 역대 가장 많은 1,432편의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 이는 전년도보다 142편이 늘어난 것으로 극영화와 실험영화 작품 수가 크게 증가한 결과입니다. 예심위원 여섯 명은 팬데믹 여파에도 식지 않는 창작에 대한 열기를 체감할 수 있었고, 또한 현재 상황이 영화 형식과 창작 방식에 미치는 영향과 변화의 조짐을 흥미롭게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예심위원들은 출품된 작품을 여러 단계에 걸쳐 숙고 과정과 장시간 논의를 거쳐 총 24편(극 14편, 애니 4편, 다큐 4편, 실험 2편)을 단편경쟁 상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서사적, 기술적 완성도, 새로운 형식에 대한 실험, 소재의 다양성, 깊이 있는 통찰과 사유를 두루 고려하여 분명하고 개성 있는 목소리를 지닌 작품을 선정하고자 하였습니다.

극영화에서는 팬데믹의 여파로 보이는 형식적, 소재적, 감정적 선택이 한 경향처럼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작품의 세계관에도 그대로 보이거나, 바이러스로 인한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소재가 증가했으며, 직접적 소재가 아니더라도 고립감과 우울, 내면의 탐색과 사유, 직접적 교류의 부재를 다루는 경향이 눈에 띄었습니다. 형식적으로도 폐쇄적, 한정적 공간 안에서 전개되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제한된 창작 여건을 저마다의 영화적 아이디어로 돌파하려는 시도들이 돋보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 영화가 어떻게 변해 갈지 가늠하고 고민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지속적인 여성영화의 강세, 상실과 부재, 한 부모 가정을 소재로 한 영화의 증가가 눈에 띄었는데, 이를 보다 새로운 화법과 가볍지 않은 시선으로 다룬 작품들에 주목했습니다. 다만 다양한 세태와 시류를 반영하는 영화들이 많았음에도 소재의 특이성이 깊은 통찰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다소 평이하게 접근한 작품이 많았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실험영화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크로스오버 형식으로 제작된 작품이 많았습니다. 또한 매체 자체의 특성과 텍스트를 재배열하여 개인 또는 사회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창조적으로 재현하는 작품도 많았습니다. 다큐멘터리에 애니메이션이나 실험영화 형식이 활용되는 방식이 눈에 띄었는데, 이는 매체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현시대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인 동시에 팬데믹의 영향으로 촬영이 용이하지 않은 점 또한 얼마간 반영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더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작품이 많지 않아 현 상황의 한계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건과 상황이 끊임없이 변하고 불안이 지속되는 시기에 더욱 예민한 감각으로 시대를 읽어 내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영화를 지속해 가는 결의의 작품들을 만났습니다. 올해의 영화들을 소개하는 기쁜 마음과 더 많은 작품을 포함할 수 없었던 아쉬움을 전합니다. 식지 않는 열정으로 영화를 만들어 주신 감독, 배우, 스태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1 본선 단편경쟁 부문 예심위원 (가나다순)
박근영(영화감독 <정말 먼 곳>)
신아가(영화감독 <속물들>)
안지은(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래머)
한재섭(광주영화영상인연대 씬1980 편집장)
허남웅(영화평론가)
홍은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