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1 새로운선택 장편 선정의 변

서울독립영화제2021 새로운선택 부문 장편에는 총 7편의 작품이 선정됐습니다. 먼저 각 작품의 감독님들과 배우분들, 참여 스태프분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신선의 <모퉁이>는 대학 영화과를 함께 다닌 세 친구의 우연한 재회와 그들 사이의 미묘한 기류 변화를 그립니다. 장소와 공간의 특성을 영리하게 이해하고 카메라 움직임을 꼼꼼하게 설계한 뒤 시작되는 대화에는 날 선 긴장과 투박한 진의가 무심한 듯 정확히 묻어납니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말의 행간에, 밤의 길모퉁이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서보형의 <벗어날 탈 脫>에는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삶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남자와 더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된 미술 작가가 있습니다. 다른 시간대에 같은 공간을 점유한 이들은 각자의 두려움과 마주하고 각성하는가 하면 어렴풋하게 서로를 느끼다 일순간 강렬하게 마주 섭니다. 쇼트 하나하나의 쓰임을 알고, 앵글과 카메라 움직임의 묘를 이해하며 치밀한 형식 미학을 보여주는 영화는 결국 ‘무엇이 영화가 될 수 있는가’를 찾아가 봅니다. 박근영의 <서바이벌 택틱스>는 생존의 기술(技術)이라 쓰지만 실은 생을 다르게 기술(記述)하려는 듯합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남긴 흔적과 감각을 외면할 수 없는 이는 다시금 용기 내 애써보기로 하고 그로 인해 우리는 낯선 타인과의 동행 길에 함께 오를 수 있게 됩니다. 비록 영화 속 죽음과 부재의 원류는 밝혀지지 않더라도, 흔적을 되짚은 끝에 맞는 환기는 꽤 맑고 시원합니다. 섣부른 낙관도 깊은 비탄도 없는 이 선선한 관조에 어쩌면 ‘생존의 기술’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정환의 <혜옥이>는 고시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저당 잡힌 젊음의 초상을 통해 앞선 세대가 후속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남긴 이름, 정체성, 책무의 허상을 드러냅니다. 특히 타인의 과잉된 욕망과 그 압력을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육체는 자동 반사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는데 이러한 몸의 출현이란 의미심장합니다. 감정원의 <희수>를 한마디로 요약할 재간은 없습니다. 둔중한 기계 더미 속 공장 노동자 희수, 홀연히 바닷가로 떠나 또 다른 일을 하며 낯선 이들과 만나길 거듭하는 희수가 그곳에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파악하고 설명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영화는 이 물음 앞에서 결심한 듯, 희수의 자취, 희수의 종적, 희수의 자리, 희수의 조각을 그러모아 보는 일을 유일한 최선으로 삼고 끝까지 그 길을 가봅니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인 윤가현의 <바운더리>는 자신을 포함한 페미니스트 동료들의 치열한 4년여의 활동 기록이며 친애하는 동료들에게 ‘끝까지 살아 있으라’고 말하는 애틋한 응원과 연대의 편지입니다. 여성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긍정하며 몸의 해방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시간, 문제는 몸이 아니라 몸을 ‘음란물’로 만드는 법과 제도, 시선과 이 사회의 메커니즘임을 재차 확인합니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그림 그리고 서예 하는 엄마 ‘작은새’와 시 쓰고 흥이 넘치는 아빠 ‘돼지씨’를 딸인 감독 김새봄이 사려 깊게 담아낸 영화입니다. 가족사, 부부지간, 부모와 자식 사이에 얼마간 예상 가능한 갈등 서사와는 다른 결을 보입니다. 살아가듯, 그림 그렸고 글을 썼을 뿐이며 창작이라는 게 특별한 일인 적 없던 이들에게 일상은 예술입니다. 엄마와 아내, 아빠와 남편이라는 역할이 아니라 ‘작은새’와 ‘돼지씨’를 더 힘껏 들여다보게 하는 이 영화의 시선에는 ‘지금, 이곳’을 향한 강렬한 애정이 샘솟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1 프로그램위원회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2021 집행위원장)
정지혜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