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1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선정의 변

 

서울독립영화제2021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에는 총 15편의 작품이 선정됐습니다. 먼저 막다른 상황 앞에서도 생의 농담이 갖는 위력을 잊지 않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영아의 <낮과 달>은 죽은 남편의 아내와 남편의 과거가 낳은 인연들이 만난다는 과감한 설정을 두고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가더니 끝내 이해의 가능성을 타진해 냅니다. 능청스러운 배우들의 연기 하모니가 반짝입니다. 곽민승의 <말아>는 팬데믹 상황으로 자칫 우울과 무력감에 압도될 수 있었던 인물이 김밥을 마는 단순 명쾌한 노동을 통해 생의 활력을 얻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드리기에 이릅니다. 이재은, 임지선의 <성적표의 김민영> 속 인물들은 한때는 절친한 친구였으나 시간이 흘러 우정의 온도에 미묘하지만 분명한 변화를 겪습니다. 사랑이 지나간 뒤 써 내려가는 편지에는 멜로드라마의 비감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사람과 사랑, 삶과 죽음, 영화와 인생을 둘러싼 깊은 통찰의 영화들이 있습니다. 장률의 <야나가와> 속 죽음을 앞둔 남자는 야나가와로 가 과거 연정의 상대와 재회하고 잠시나마 꿈처럼 아득한 생동의 기운과 조우합니다. 시간, 공간, 언어의 경계는 무력하고 말의 뉘앙스, 몸짓, 읊조리는 노랫소리의 리듬이 일렁입니다. 김성환의 <오늘 출가합니다>는 불교 귀의를 거부당한 사내와 영화 찍기가 좌절된 사내의 로드․버디 무비입니다. 너무 무겁지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게 출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여정에는 경쾌한 낙천의 기운이 감지됩니다. 오세현의 <우수>는 표면상으로는 친구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남자의 외출 같지만 실은 과거의 자신을 더듬대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는 유령 영화,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사이의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미영의 <절해고도>는 자기만의 고통 속에서 사경을 헤매던 고독한 존재들이 결국 멀리 있는 타인들 덕분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냄을 의연하게 보여 줍니다. 품위를 잃지 않으며 살기 위해 있던 곳을 과감히 떠나는 힘이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의 밀도 역시 상당합니다. 배우 유태오의 감독 데뷔작 <로그 인 벨지움>은 코로나19로 자가 격리를 하게 된 유태오의 셀프 비디오로 시작해 영화와 연기에 관한 자문자답의 1인 모노드라마, 실험극을 거쳐 영화에 이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자전적 드라마가 됩니다. 전쟁의 비극과 극렬한 이데올로기 대립을 겪은 한국 현대사의 자장 아래 있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허철녕의 <206: 사라지지 않는>은 2014년 출범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진행한 3년간의 유해 발굴의 기록이자 그 시간의 무게와 생사의 의미를 잊지 않으려는 감독의 적극적인 기억 투쟁, 참여의 결과물입니다. 김오안과 브리지트 부이오의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고 김창열 화백의 아들인 감독이 아버지의 작품 세계의 출발과 과정, 모티프와 철학을 들여다보며 한 명의 예술가의 존재감을 다시금 길어 올립니다. 양영희의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조총련 활동가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전하는 제주 4.3의 기억을 통해 이들 가족의 역사와 실존의 무게를 절절히 전해 옵니다. 한편 황폐해진 우리 마음을 음률과 율동으로 다독이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김성은의 <섬이없는지도>는 피와 눈물로 얼룩진 제주, 그곳 땅과 시간, 그곳의 사람과 자연을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더 건강한 방식으로 제주와 함께 살고자 하는 이들이 전하는 리드미컬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입니다. 고영재의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데뷔 40주년을 맞은 노래하는 시인 정태춘의 음악 이야기이자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의 시정과 서정의 시간입니다. 끝으로 에두르지 않고 이 시대의 변화와 화두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오세연의 <성덕>은 성공한 ‘덕후’였다가 해당 연예인의 성범죄로 팬심을 거두게 된 이들의 복잡한 심경, 자문 끝에 이른 결연한 선택, 고백과 성찰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임흥순의 <포옹>은 이상한 꿈 같은 팬데믹 상황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이 시대를 어떤 이미지로 감각할 수 있을까를 되묻습니다. 영상 예술을 하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보내온 이미지와 사운드를 다시 구성하는 과정과 개별 기록들이 지금을 짐작하는 일말의 단서가 돼 줍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1 프로그램위원회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2021 집행위원장)
정지혜(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