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2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도시의 얼굴, 이방인의 시선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환상의벽>, <가변차선>, <슬픈 열대>, <비명도시>, <나마스테 서울>, <지하생활자>, <시인 구보씨의 하루>]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도시의 얼굴, 이방인의 시선

 

한국영상자료원과 서울독립영화제의 공동기획 사업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이 다섯 번째를 맞는다. 과거의 영화를 지금 관객에게 소개하며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영화의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필름의 훼손만큼이나 빠르게 유실되는 독립영화의 빛나는 순간과 기억이 본 사업을 통해 늦지 않게 아카이빙되고 있어 뜻깊다.

2022년 기획전의 주제는 ‘도시의 얼굴, 이방인의 시선’이다. 거대 담론이 타올랐다 사라지며 사람들의 마음속 불꽃도 명멸해 갔다. 열정과 냉소가 교차하는 시대의 공기가 당대 청년의 필름에 아로새겨져 있다. 1980년에 만들어진 장길수 감독의 작품 <환상의 벽> 외에는 모두 1990년대 초반 작품으로 <시인 구보씨의 하루>(유하, 1990), <가변차선>(양윤호, 1992), <비명도시>(김성수, 1993), <지하생활자>(김대현, 1993), <나마스테 서울>(김대현, 1994), <슬픈 열대>(육상효, 1994)까지 총 7편이다.

장길수 감독은 2019년 <강의 남쪽>(1980) 이후 두 번째로 서울독립영화제를 찾는다. 1970년대 하길종과 ‘영상시대’의 유산을 계승했던 장길수의 두 번째 단편 <환상의 벽>은 독일문화원 산하 동서영화연구회 회원들이 함께 만든 문화원 세대의 희귀한 유산이다. 계급과 계층의 장벽 앞에 좌절하는 청년을 통해 당대의 청년 영화인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막장 노동자의 현실을 리얼리즘적 태도로 담았던 <강의 남쪽>과 달리, 실내에서만 촬영한 <환상의 벽>은 캐릭터의 상징과 상황적 은유가 강한 미니멀한 실험영화이다.

<시인 구보씨의 하루>를 필두로 한 1990년대 작품은 서울독립영화제가 집중적으로 소개해 온 1980년대의 작품과는 다른 궤적을 보여 준다. 제작진 다수가 1980년대 대학을 다녔기에 기존 영화운동의 영향권에 있으면서도 확연히 달라진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사회주의가 느닷없이 몰락하고 더욱 힘이 세진 자본주의가 진군하던 시절, 당혹한 청년들은 세계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전 작품에서 1990년대 초반 대도시 서울의 변화와 욕망의 징후, 성공한 도시의 이면이 탐색되고 있다.

<시인 구보씨의 하루>는 예술가의 자존심을 잠시 보류해야 하는 어느 시인의 바쁜 하루를 쫓고 있다. 등단한 시인으로서 텍스트를 영화에 접목하면서도, 감독이 직접 촬영한 카메라를 통해 대도시에 도래한 소비자본주의의 새로운 징후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양윤호 감독의 <가변차선>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위험천만한 도시 고가에서 안전장치 없이 노동하는 두 인물을 통해, 사회에서 배제된 마이너리티들이 무엇으로부터 고립되고 위협받는지 증언한다. 김대현 감독의 두 작품은 사회 드라마로 메시지와 주제가 강하다. <지하생활자>는 크리스마스이브라는 우호적 시간과 어두운 지하방에 머무는 청년의 공간을 중첩하고 대비함으로써, 계층 분화가 심화되는 사회의 그늘을 폭로하고자 하였다. <나마스테 서울>은 이주 노동자가 등장하는 최초의 영화로 추정된다. 낯선 존재에 대한 차별과 혼란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강남을 대표하는 고층 아파트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인간성을 표현한 카메라워크가 인상적이다. 육상효 감독의 <슬픈 열대>는 무거운 작품이 지배적이었던 단편들과 달리 신선한 코미디 장르 영화로 당시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신문을 도난당한 남자가 인생의 낙을 빼앗기고 닷새간 추적극을 펼친다. 소시민의 무료한 행각이나 언론이 혈안이 된 정치인의 스캔들이나, 기묘하게 웃기고 슬픈 현실이다. <비명도시>는 기성 영화인이 십시일반으로 참신한 독립영화 발굴을 위해 운영했던 ‘독립영화창작후원회’의 지원작이다. 은폐된 도시의 폭력을 드러내는 서사를 비롯, 푸른색 형광 조명과 오렌지색 전구 조명 등 김성수 감독 영화 세계의 중요한 출발을 35mm 단편에서 일찌감치 발견할 수 있다.

올해 기획전 작품들이 비슷한 커뮤니티에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유하, 김성수, 김대현 감독이 동국대학교 대학원을 다녔고 양윤호 감독은 동국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유현목 감독이 재직하던 시절 거장의 영화 수업을 경험한 것. 유하, 김성수 감독은 학부 시절 ‘반영화(反映畵)’라는 서클을 만들고 예술적 스승이었던 고(故) 진이정 시인과 함께 활동을 펼쳤고, 육상효 감독은 ‘수요전영회’라는 단체에 속해 있었다. 김대현 감독이 주도했던 ‘영화제작소 현실’은 독립영화 최초의 배급사 ‘인디라인’으로 이어지며 제작, 배급, 영화제 등 짧은 기간에 대단히 역동적인 활동을 펼쳤다. 1998년 인디스토리와 미로비젼 등이 창립되는 상황에서, 인디라인은 일부 작품을 인디스토리에 이전하고 다시 제작 중심으로 방향을 수정한다. 김대현 감독이 보유하고 있던 필름을 2021년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하며 이번 기획전이 성사될 수 있었음을 밝힌다.

현역에서 활동하는 선배 영화인들이 초기작의 상영을 허락해 주셔서 다시금 감사드린다. 영화 제작을 훈련하던 시기의 작품이지만, 청년 영화인의 이상과 열정이 시간을 가로질러 필름 속에 아름답게 기억되어 있었다. 언제나처럼 올해도 정성껏 선배들과 만나 질문하여 구술사와 영상 아카이빙을 남긴다. 한국 독립영화 연구에 귀한 기초 자료가 되길 기원한다.

 

서울독립영화제2022 집행위원장 김동현

 

▷ SIFF2022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도시의 얼굴, 이방인의 시선 (섹션순)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1]
환상의 벽
장길수 | 1980 | Experimental | B/W | DCP | 7min

가변차선
양윤호 | 1992 | Fiction | Color | DCP | 25min

슬픈 열대
육상효 | 1994 | Fiction | Color | DCP | 21min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2]
시인 구보씨의 하루
유하 | 1990 | Fiction | Color | DCP | 20min

지하생활자
김대현 | 1993 | Fiction | Color | DCP | 15min

나마스테 서울
김대현 | 1994 | Fiction | Color | DCP | 19min

비명도시
김성수 | 1993 | Fiction | Color | DCP | 19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