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2 본선 단편경쟁 부문 심사평

 

이번 본선 단편경쟁 부문의 작품들을 보며 ‘해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흔히 몰입감 높은 영화들이 갖춘 요소를 배제한, 어딘가 하나씩 어긋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를 해체하고, 형식을 비틀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무수한 시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도 기성 영화에 대한 피로감 내지는 독립영화로서 갖추어야 할 실험적 태도가 현 한국 독립영화에서 빠르게 확장되고 있음을 엿보게 된 것 같습니다. 한편, 본상에 대한 결정은 빨랐습니다. 과감한 시도와 결단을 넘어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 탁월하게 결합돼 형용하기 어려운 매력을 만들어 낸 작품들이 심사위원 사이에 공통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올해의 단편 대상은 김효준 감독의 <자르고 붙이기>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모든 면에서 탁월합니다. 서사, 대사, 연기 조합, 장면 연출 등 뛰어난 점을 다 나열하고 나면 단순히 완성도가 높다는 게 아닌가 반문할 수 있지만, 훌륭한 요소들이 매끄럽게 조화된 완성도가 아닌, 되레 완성된 영화에서 생겨난 울퉁불퉁한 힘이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이끕니다.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들로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의 서사에서 인물에 대한 정보는 지속적으로 한 박자 늦게 드러납니다. 그러한 엇박은 가난해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 아닌, 오늘을 살아 내는 인물들의 생생함과 삶의 의지를 기어코 빛나게 만듭니다. 또한 결코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 안에서 터무니없이 희망을 말하거나 쉽게 절망을 택하지 않는 인물들의 작은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강력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울퉁불퉁 조화되면서도 이토록 섬세히 나아가는 영화는 놀랍도록 매력적이고 뛰어납니다.

단편 최우수작품상은 김민경 감독의 <음각>입니다. 지나친 고통의 기억은 모순적이게도 기억하려 할수록 산산조각 되어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는 계속 세상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생존 본능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러한 고통과 기억의 속성을 이 영화는 매우 적합하게 담아냅니다. 버려진 조각이 네거티브 필름을 만나 음각을 만들고 그를 통해 언어로선 결코 증언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을 날카로운 감각으로 소환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증언의 생생함을 위한 당사자성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제삼자에 전하는 시도를 통해 영화는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확장됩니다. 고통의 기억이 제삼자와 공유하며 위로받았기에 끝나는 것이 아닌, 실은 그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기억의 구체성은 더 큰 무력감과 두려움을 마주하게 합니다. 섣부른 위로 대신 상처와 고통, 기억을 되새기며 치열히 진실에 가닿으려 한 작품과 사려 깊은 감독의 시선에 뜨거운 지지를 보냅니다.

단편 우수작품상은 유우일 감독의 <박영길 씨와의 차 한 잔>입니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익숙함과 낯섦 사이를 오가며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흔히 우리가 ‘영화’라고 말할 때 떠올릴 법한 가장 기본적인 장면과 소리의 요소를 취함으로써, 흡사 고전영화의 향수를 짚는 영화임을 기대하게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곧 이러한 기대를 저버립니다. 두 인물 사이 오가는 대화에서의 어긋남을 증폭시키며 이야기, 그리고 영화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인물 각자의 위치에서 상대적으로 해석되는 말과 흩어지는 농담들, 이해할 수 없는 언어, 진실인지 허구인지 증명할 길 없는 이야기, 프레임 안과 밖의 모호한 경계 등을 적극적으로 차용합니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그동안 성공적이라 일컬어진 영화들이 지닌 영화적 설정, 목표 등을 비켜 감에도 불구하고 기이하고 뒤틀린 집중력을 발휘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 흔히 기대되는 요소를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영화의 정수를 드러낸 용기 있는 시도와 선택에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2 본선 단편경쟁 심사위원 일동
김현정(영화감독)
이동은(영화감독)
이주승(배우/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