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2 본선 단편경쟁 부문 예심 심사평

 

2022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된 단편 작품 수는 1423편(극 1082, 애니 167, 다큐 89, 실험 74, 기타 11)입니다. 이 중 28편이 단편경쟁 부문에 선정되었고,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은 10편입니다. 예심위원들은 출품작들을 숙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각 작품들이 던진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만났습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감독의 출사표와 만나는 각기 다른 좌표들이 우리의 토론을 더욱 열띠게 했습니다. 다양성이라는 변명에 함몰되지 않고, 그 작품만의 치열한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타협 대신 차라리 질문의 자리에 다시 돌아오는 작품들, 그리고 그 자리가 우리가 함께 살아왔고 계속 함께 살아가야 할 시간과 공간임을 잊지 않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선정작들의 간략한 소개를 통해 각 작품들이 고유하게 접근해 간 좌표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과거의 귀환을 통해 현재를 물으면서 독자적인 영화적 접근법을 선보인 작품들이 있습니다. 한 소녀가 어른이 되기까지의 용기와 기쁨을 ‘읽어 내리는’ <양림동 소녀>, 길 잃은 개에 대한 염려에서 시작된 면목 없던 시절의 끝나지 않은 기억 <행진대오의 죽은 원혼들>, 애도의 다음 단계를 묻는 만가(輓歌)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 장르가 시대와 만날 때 생기는 거리를 통해 서로에게 더 가까이 접근하는 <새벽 두시에 불을 붙여>, 당신의 손에서 당신의 얼굴로 이행되는 시선으로 비로소 당신을 마주하게 된 순간 <상실의 집>, 네거티브에 긁어 내 ‘휩싸인’ 상처를 대면하는 <음각> 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일상 속의 균열을 통해 우리와 나의, 혹은 시스템과 개인의 불일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물으면서 동시에 영화의 확장을 도모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인터넷 파편들로부터 일상 안의 진짜 유령 이미지를 묻는 <클리나멘>, 눈의 권력과 장악이 배제하고 있는 것을 찾아 나선 <로봇이 아닙니다.>, 자신의 작품 속을 살아 내고자 하는 작가가 만나는 세상 <힘찬이는 자라서>, 카메라와 두 인물의 거리만큼 다단한 계층적 중첩 <급처합니다… 네고 불가>, 긴장감을 내내 유지하면서 캐릭터의 심리에서 시대의 분위기를 분출시키는 연출 <보사노바리듬에섹션끝나고솔로는리드기타부터>, 대의와 개인의 관계를 묻는 컨텍스트의 차용 <AMEN A MAN>, 아나크로니즘이 빚어내는 부조리극 속의 소외 <박영길 씨와의 차 한 잔>, 길의 끝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품고 있었던 마음의 무게 <정민이의 겨울> 들의 다채로운 세계가 그러합니다.

영화의 형식적, 내용적 성취에 대한 고심들만큼이나 그로부터 자유롭게 새로운 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흐릿해진 과거가 사물의 관점에서 인사를 보내는 <안경>, 아이의 실종과 부동산 광고 텍스트 사이의 어떤 지점을 지켜보는 롱테이크 <어나더타운>, 황량하게 내던져진 소명 앞에 보이지 않는 기도문의 알레고리 <어린 양>, 규정성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자신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의 컬렉션 <귀귀퀴퀴>, 사뮈엘 베케트와 장용학, 그리고 애니메이터의 부단한 손길이 병치되는 <소진된 인간>, 개인이 자신의 시대를 벗어날 수는 없어도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줄 수 있다는 <두 여인> 들의 시도들을 눈여겨보고 싶습니다.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나의 선택, 당신의 선택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또한 그 각각의 선택이 쉽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우리가 맺는 관계의 어려움과 사랑스러움을 오가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 풋풋한 시작 <사랑의 알러지>, 쓰는 자와 읽는 자가 공유하는 공간과 시대에 대한 성찰 <가정동>, 제도적 규범을 넘어서고서야 되찾은 가족 화목담 코미디 <맞담>, 삶의 회한과 결단의 순간을 그려 낸 애니메이션 만화경 <체험! 삶의 현장>, 나로 인한 주변 사람들의 상처를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된 긴 세월 <현수막>, 남겨진 자가 독자적인 기억을 통해 생 그 자체를 긍정하게 되는 <나는 할아버지가 가장 예뻐하던 손녀였다>, 우리가 서로를 지키고 사랑한다고 했을 때 무엇으로부터 지켜 내려고 했는지를 묻는 <자르고 붙이기>, 표면적 합의의 중론에 대한 도전적인 반격 <알은 척 아는 척> 들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편수 제한으로 더 많은 작품들을 본선 경쟁에 올리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작품들 또한 앞으로 여러 기회를 통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영화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시선을 넓혀 주고 함께 살아가는 길의 어려움과 기쁨을 나누어 준 모든 출품작의 스태프들과 배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여러분들이 영화와 함께 가는 길을 지지하고 끝까지 응원할 것입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2 본선 단편경쟁 부문 예심위원 (가나다순)
곽민승(영화감독 <말아>)
김미영(영화감독 <절해고도>)
박광수(정동진독립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이수정(영화감독 <재춘언니>)
조현나(씨네21 기자)
허남웅(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