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2 본선 장편경쟁 부문 예심 심사평

2022년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장편경쟁 부문에는 역대 최다인 151편이 출품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 창작자들을 옥죄어 온 코로나 시국을 떠올리면, 놀라운 일입니다. 이 시대의 궁지를 주제로 삼은 영화들만이 아니라, 마스크 쓴 인물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영화들도 이제는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물론 물리적, 심리적 한계와 제약 안에서 만들어진 영화들 모두에서 투지를 발견한 건 아니지만, 다수의 작품이 다른 시대는 다른 영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 믿음이 관객들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4인의 심사위원은 예년보다 더 오랜 시간에 걸친 토론을 통해 최종 13편의 영화를 선정했습니다.

먼저 우리를 사로잡은 극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장르를 가로지르는 돌파력과 괴이한 상상력과 시각적 기세로 예측 불가능하게 뻗어 나가는 무섭고도 흥미진진한 <기행>, 황폐하게 암울해진 시절을 수행하듯 온몸으로 묵묵히 살아 내며 묵직한 종소리를 울려 퍼뜨리는 <종>, 각자의 자리에서 상실 이후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견디는 살아남은 이들이 끝내 서로를 온전하게 응시하는 <물비늘>, 갑작스럽게 여행을 떠난 두 친구가 우연한 만남을 거쳐 결국 자신의 웅크린 마음을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마주하게 하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지극히 평범한 삶의 조각들이 살짝 어긋난 형태로 신기하게 연결되어 비범한 리듬의 세계로 재탄생한 <괴인>, ‘매트리스 곰팡이’라는 무의미한 얼룩에 그로테스크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기발한 아이디어를 끝까지 도전적으로 밀고 나가는 데 성공한 <다섯 번째 흉추>, 일상을 무기력하게 반복하던 한 남자의 즉흥적인 여행길에 동행해서 사사롭지만 생기로운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며 생에 대한 미약한 의지라도 되살리고픈 <늦더위>, 특정한 설정이나 전제 없이 낯선 땅에서 연결된 사람들의 초상과 동선만으로 우아하고 독특한 관계의 지도와 언어와 풍경을 그려 낸 <이어지는 땅>, 어느 고고학 연구자의 초상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 곁에서 그보다 집요하게 지속되는 불안, 집착, 미련, 갈망, 두려움 등을 고요하게 탐구하는 <사랑의 고고학>까지 총 9편의 극영화가 관객들을 기다립니다.
올해 출품된 다큐멘터리들은 예년과 비교해 주제나 형식 면에서 강렬한 인상을 안긴 작품들이 안타깝게도 적었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인 다큐멘터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만금 갯벌에 묻히거나 사라진 과거의 기억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그곳의 경이로운 풍경과 활동으로 현재화하며 질문하는 <수라>, 도박에 중독된 사채업자 지인의 일상을 치열하게 찍으면서도 ‘다큐멘터리’의 가치에 대해 거듭 회의하며 감독 자신의 혼돈을 감추지 않는 <사갈>, 섭식장애를 앓았던 딸의 오랜 상처와 이를 향한 엄마의 죄의식과 무력함을 통해 모녀 관계의 애틋함만이 아니라 서로 닿을 수 없는 냉정한 거리 또한 보여 주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동성애자 남성인 친구의 내적 갈등을 긴밀한 시선으로 찍는 동안 이성애자 여성인 감독 자신의 불안한 삶 또한 들여다보는 <퀴어 마이 프렌즈>까지 4편의 다큐멘터리가 본선에서 선보입니다.

영화를 향한 애정과 의지만으로 힘든 시간을 버티며 작품을 완성하셨을 분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며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작품들 또한 다른 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생기길 기원합니다. 고단했던 2022년 한 해가 13편의 독립 장편영화와 함께 뜨거운 담론 속에서 마무리되길 기대합니다. 출품해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2 본선 장편경쟁 부문 예심위원 (가나다순)
김순모(프로듀서)
김영우(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 및 프로그램위원)
남다은(영화평론가)
정지혜(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