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22 새로운선택 장편 선정의 변

서울독립영화제2022 새로운선택 장편 부문에는 총 7편의 작품이 선정됐습니다. 먼저 상영을 앞둔 각 작품의 감독님들과 배우분들, 스태프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7편의 개별 영화가 주목하는 영화 속 인물, 세태, 상황은 영화 밖 오늘의 거친 민낯을 경유하며 관계의 세부를 면밀히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얼마간 공통됩니다. 영화라는 미지의 세계를 통해 난망한 현실 세상을 다시 만나는 일의 기쁨과 슬픔, 벅참과 고됨을 관객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길 고대합니다.

먼저 4편의 극영화를 소개합니다. <너와 나>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두 소녀의 애틋한 하루의 세밀화입니다. 오해와 걱정, 질투와 원망, 불안과 자기혐오의 감정적 파편들을 그러모으고, 작은 소품 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한 이미지의 연출 끝에 영화는 사랑의 언어를 우리에게 속삭여 옵니다. <정순>은 그간 논의와 서사의 중심에서 뒷전이거나 많은 경우 없는 존재로 여겨진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와 그에 따른 사회적 편견이라는 살풍경 앞에서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겠다는 한 여성의 절절한 울음과 결연한 몸부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옥만세>의 두 소녀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합니다. 자신들을 괴롭힌 친구를 찾아가 제대로 되갚아주겠노라며 기세 좋게 길을 나서지만 이마저도 실패할 위기에 처합니다. 상황은 자못 엄중하고 심각한데 계획과 예상이 자꾸 어긋나면서 소녀들의 복수극은 엉뚱한 곳으로 흐릅니다. 이 예측불허의 모험과 이야기의 형국 끝에 우리는 새로운 활기, 시작의 순간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페이퍼맨>은 강제 퇴거 후 다리 밑에서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중년 남성을 필두로 각기 다른 세대의 갈 곳 없는 인물들을 하나둘 다리 밑으로 모여들게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섣불리 유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내지 않고, 어중간한 심리적 거리와 감정적 상태 그대로를 한동안 유지해 나갑니다. 그리고는 서서히, 그러나 정확히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역학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냅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한 편의 애니메이션도 소개합니다. <두 사람>은 50년 전 독일로 가 간호사로 일했고 지금은 은퇴한 김인선, 이수현 커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70대 외국인 이민자 커플로 사는 일상과 지금도 여전히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하고 지역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가는 두 사람의 삶의 시도가 퀴어로 살아가는 후속 세대에게 힌트가 돼줄 것입니다. <표류자들>의 ‘나’는 신용불량자가 된 친구와 같은 일자리를 구해 일하고 함께 생활하며 그의 재기를 다큐멘터리로 찍으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제목 그대로 영화는 예상치 못한 순간 궤도를 이탈해 방향과 확신을 잃게 된 존재들의 초상, 흘러가는 계절과 시간의 흔적, 도시 유랑자들에 관한 조용한 소묘, 그러나 끝내 애정 어린 바람과 작은 소망을 담아보려는 또 한 번의 시도입니다. 완성도 높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입니다. 시베리아 예이츠 마을의 소녀 그리샤가 동생 꼴랴와 함께 아픈 엄마를 살리기 위해 전설의 붉은 곰을 찾아가는 모험과 성장의 드라마입니다. 동화와 설화적 요소의 결합, 낯설고도 아름다운 툰드라 지역의 풍광 묘사, 개발과 공존, 인간과 자연의 대립 서사가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구현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각 영화가 품고 있는 가능성이 더 많은 관객분과 만나길 바라봅니다. 아쉽게도 상영되지 못하는 작품들은 또 다른 기회로 만날 수 있길 기다리며 출품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2 프로그램위원회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2022 집행위원장)
김영우(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 및 프로그램위원)
정지혜(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