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FF2010 예심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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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2010 예심총평

매년 12월 개최, 한 해의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서울독립영화제. 올해는 단편 584편 장편 47편 총 631편의 작품이 출품되어 저마다의 영화적 장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작품의 출품편수는 작년보다 줄어든 수치입니다. 독립영화 지원 정책의 변화와 예산 삭감 등의 보수적 움직임이 직접적으로 제작활성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하지만, 지원 제도가 독립영화 활성화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영화는 지원제도와 무관하게 지난 20여 년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고군분투해 왔고, 올해 출품된 631편 또한 그 결과일 것입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10의 슬로건은 “毒립영화 맛좀볼래” 입니다. 관객들은 독립영화의 진정한 맛을, 독립영화를 탄압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은 독한 맛을 보라는 의미입니다. 중의적이면서 실천적인 올해의 슬로건 아래 6인의 예심위원들은 본선경쟁작 심사의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매년 그렇지만 작품 간 편차가 줄어드는 가운데, 여건상 한정된 작품만을 가려내야 한다는 것은 심사에 가장 큰 고난입니다. 때문에 한편 한편의 작품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심위원들은 그 결과 출품된 모든 작품을 통해 시대를 조망하고, 체험하며 비전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감독님들의 놀라운 열정에 독립영화의 미래가 있음을 확신하며, 서울독립영화제는 올해 단편 33편, 장편 11편 총44편의 작품을 본선경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단편부문에 출품된 작품들은 세상 속에서 견디며 고민하는 열정과 결기를 담는 독립영화 정신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줍니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이 땅의 현대사와 국가폭력을 기억하려는 노력, 천민자본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을 다룬 영화들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를테면 88만원 세대의 삶의 조건과 이주노동자, 동성애자와 장애인 등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은 작년에 이어 줄기찼습니다. 특히 올해는 여성 노동자, 외국인 여성, 여성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품은 영화가 많아 이채로웠습니다. 해마다 여러 편 출품되는 연애담 가운데서도, 여성성을 섬세히 다루거나, 시대의 증후군으로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1년 넘는 시간을 싸워서야 희생자들을 애도할 수 있었던 용산의 기억은 특히나 강렬하게 독립영화 감독들을 사로잡은 듯합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쳤던 이들의 죽음을 새기는 여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예심 과정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용산’의 아픔은, ‘토건국가’로 불리는 남한에서 끝없이 자행되고 있는 철거와 재개발 일반에 대한 문제 제기, 가족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삶의 조건 일반을 사유하는 작품으로 확장되는 등 큰 울림을 낳았습니다. 허나, 이들을 소재로 활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옹골찬 성찰과 실천을 담아낸 작품은 아쉽게도 흔치 않았습니다. 한편, 현재라는 시공을 탈피하려는 욕망을 표현한 영화들이 여러 편 출품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강퍅한 현실을 회피하려는 무의식의 발로가 아닐는지, 조심스런 추측을 해봅니다. 청계천 등 생태 문제를 힘 있는 이미지로 축약하는 애니메이션의 힘도 여전했습니다. 올해는 특히 단편 실험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주제나 소재를 취할 때만 ‘독립영화’ 정신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혁신과 실험을 감행하려 한 연출자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디지털 촬영이 대세가 된 제작 환경의 영향 탓인지, 올해도 단편작품들의 상영 시간은 길어지는 추세였습니다. 그 속에서 촌철살인의 독립영화 정신과 미학을 함께 간구하려 애쓴 작품을 고르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47편의 장편작품들 또한 각자의 개성을 품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들과 개개인의 내면에 접근하는 작품들이 두드러졌습니다. 이주민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을 비롯해서, 과거 민주화운동과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추억과 반성을 넘어 그 현재적 의미를 묻는 작품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용산’에 대한 관심은 단편 뿐 아니라 장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현장에 함께 했던 이들에 대한 뚝심 있는 성찰 뿐 아니라 이러한 폭력의 역사가 그저 오늘의 용산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감독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은 과거의 시간을 부채처럼 안은 채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가의 예리한 스타일이 시대와 충돌하며 힘을 발휘하는 작품들 또한 예심위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와 함께 사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스크린으로 담는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와 의미를 지니는 작품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미들이 조금 더 정제된 영화적 언어와 형식과 만났을 때 더욱 큰 울림과 무게를 가지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심사 기간 내내 수많은 생각들과 반성, 영화를 보는 자체의 기쁨을 전해주었던 47편의 장편 중 예심위원회는 11편의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다큐멘터리 7편, 극영화 4편으로 최근 몇 년간 뚜렷한 성과와 성장을 보여주었던 다큐멘터리의 강세는 여전했습니다.


이상의 작품들이 관객들과 행복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서울독립영화제2010은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영화제를 준비할 것입니다. 영화제 이후 보다 좋은 환경에서 독립영화가 제작되고 관객과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10 본선에 진출한 감독님께 축하를, 작품을 출품해 주신 모든 감독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서울독립영화제는 더욱 힘차게 12월로 달려가고자 합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10 예심위원(가나다순)


남다은(영화평론가)


모은영(영화평론가, 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래머)


신은실(영화평론가,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운영위원)


이강길(다큐멘터리 감독 <살기 위하여-어부로 살고 싶다>)


조규장(감독 <낙타는 말했다>)


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