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팅 아이스크림

서울독립영화제2021 (제47회)

본선 장편경쟁

홍진훤 | 2021 | Documentary | B/W | DCP | 70min 7sec World Premiere

SYNOPSIS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창고에서 ‘수해필림’이라고 적힌 의문의 필름 뭉치가 발견된다. 당시 현장을 기록하던 사진 집단들을 찾아가 이 필름의 흔적을 따라가며 복원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세계를 복구하고 손상된 사진을 복원할수록 삭제되는 세계들이 발견된다.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이 대통령이 된 후 그들이 만드는 지옥을 막기 위해 싸웠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세계. 그 엇갈림 가운데 지금, 여기의 풍경이 서서히 드러난다.

DIRECTING INTENTION

수해를 입은 민주화 운동 당시의 필름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종료될 수 없는 '민주화'의 종료를 선언하고 과거화, 역사화하려는 욕망을 발견한다. 그것은 결국 영웅화, 신화화의 결과를 낳았다. 민주화 운동의 영웅이었던 이들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IMF, 정리해고, 비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신주유주의의 비극은 더욱 가속했다. 물론 그때도 그 지옥을 막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싸우지 않을 도리가 없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기록했던 사람들. 필름을 복원할수록, 그 시대의 영웅들을 복원할수록, 그 영웅들이 만든 세계와 싸웠던 사람들은 사라져 갔다. 어떤 세계를 복원할수록 삭제되는 어떤 세계가 있었다.

FESTIVAL & AWARDS

World Premiere

DIRECTOR
홍진훤

홍진훤

STAFF

연출 홍진훤
촬영 이승훈, 이민지
편집 홍진훤
조명 박기덕
사운드 디자인 홍초선
출연 박승화, 서영걸, 이정용, 임형주

PROGRAM NOTE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창고에서 수해를 입은 필름이 발견됐다. 1990년대 범민족대회와 고 강경대 열사 관련 투쟁 현장 등이 기록된 사진일 거라 짐작된다. 유실과 복원이라는 말만 들으면 꽤 흥미로운 영화적 소재가 될 거 같지만, 정작 <멜팅 아이스크림>은 이 기대에 응할 생각이 없다. 아니, 그 기대를 어그러뜨리고 싶은 게 분명하다. 영화의 관심은 망가진 필름 속 그 시절 그곳 사람들을 다르게 불러내는 데 있다. 필름을 찍은 당신은 누구인가. 투쟁 현장의 사진이란 무엇인가. 현장에서 사진이 되는 것, 하는 것, 될 수 없는 것,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두고 영화는 1980년대 한국 사회운동의 한 축에 있던 일련의 사진 집단들, 운동으로서 사진을 찍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부터 시작한다. 노동운동을 영상이 아닌 사진으로 남긴 사진가들과 마주하고, 그들을 경유해 노동과 투쟁 현장을 되짚는 영화는 그 자체로 희귀하지 않은가. 또한 영화는 사진과 영상 매체를 대위적으로 두고 역사와 매체 그 자체의 아이러니를 보려 한다. 유실된 사진이 복원의 과정을 거칠수록, 우리 눈앞에 상영되는 현장 기록물 속 노동자들의 싸움과 눈물, 외침은 더 거세진다. 영상의 노이즈와 사운드의 뭉개짐은 심화하지만 영상 속 사람의 외침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태가 이러할진대 저 사진들을 되살리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정작 다시 살아나는 건, 신화적 우상과 신화가 되고 싶은 또 다른 욕망들이 아닌가. <멜팅 아이스크림>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정지혜 / 서울독립영화제2021 프로그래머